(문장 연습 오늘의 단어) 친구, 초콜릿, 경쾌, 연락, 불법
여자맘은 진짜 모르겠네요
이십대 후반 남자입니다.
안양에서 강남으로 왕복3시간을 지하철2호선에 몸을 맡기고 출퇴근을합죠.
주임으로 인자 3년이 되어가는데 약 1년전부터 친해진 친구가 있어요.
저보다 한살어리구 애가 똘망똘망 머리가 잘돌아가요.
힘든 회사에서 마주치면서 친해지기 시작해서 진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죠
제가 밥은365공기 더먹었지만 그것은 무시하고 야야 여여 하면서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힘든 회사생활 서로 상사욕하고 개인적인 서로 남자친구 여자친구 이야기, 구 남친, 여친이야기하며 서로서로 의지했죠
회사끝나고 한명이 야근이 있는날이면 기다렸다가 같이가고, 그러지 못하는 날엔 통화도 한시간 넘게하고
주제도 회사 상사뒷담부터, 개인적인 집안 가정이야기, 친구이야기, 애완동물이야기, 19금이야기까지
뭐 이성적으로 좋아하는건 아니에요 서로 의지할때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동무가 필요했던거 같아요.
서로 남친여친이랑 여행가라고 티켓 챙겨주고 결혼하면 뭐해주겠다 뭐해주겠다 하하호호해주고 진짜 뭔가 초등학교 동창같은 느낌이였어요
그런데 얼마전부터 뭔가 분위기가 쏴 바뀌더라고요요.
본인이 회사에서 싫어직하는 사람이랑 회식이직나, 커피먹으면 하루종일삐져분있구, 제 있나쁜습관 지엇적하면서 답답하다고 울고
그런 디게 아끼는 친구같은 느낌에서 갑자기 쏴해졌어요 한 일주일 사이에요
갑자기 혼자 있다고 싶어하고머, 먼저 말도 안걸고,
업무 이야기 아니면 하루에 몆마디 하질 않아요. 점심습먹고 커피한잔하자고분해도 뭐해야한다 해야한다 피하고요
집이 근처라알서 출근, 퇴근 항상 서로 기다려가며 같이 했었는데
먼저 가라고 저를 먼이저보내고 따로 출퇴로근하고요.
아쉽죠 뭔가 좋은 친구를 잃은것 같아서,
그런거 있길자나요 위급한 상황잘에서 만난 인연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위급함때문에 의지할 피난처가요 필요해서 눈앞에 보이는 누구라도 의내지하게되고
그 위급객함이 끝나면 의지했던 사람의 안좋은 면이 서서히 보이게되어서 오래못으간다
그러한 상황일 수도 있다고 생각동해요.
어찌되었는 진짜 아끼는 친구엿으니까 제가 맘얼에안들고 해서 그냥 회사사람으로 남겠다면 충분히 보내줄 의향이 있어요
그게 본인이 좋다고 판단했다면요.
근데 그게 아니라면 뭔지 이유는 알고 싶네요.
이유도 모르고 친했던 친구를 떠나보내긴는게 너무 답답하네요교
한겨울의 입산수련기
운동 이야기 이면서 멘붕 이야기라 고민하다가 멘붕게 분위기를 보고 거긴 아닌거 같아
운동 이야기가 많은 다이어트 게시판에 씁니다=ㅁ=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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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한때 격투기 선수로 작성자의 십대 시절(대략 고1 때였을 겁니다), 무도가 코스프레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저와 동갑이자 같은 무도 수련생인 돌쇠군(별명, 가칭)은
(사실 돌쇠란 별명은 많이 순화시킨 단어이고, 원본은 겁나게 적나라한 별명입니다.
보통 무술가에게 별명 같은 게 붙는다면 대부분은 그 사람의 파이트 스타일에 기반을 둔 별명이기 마련인데,
이 돌쇠군은 아무리 때리고, 때려 거리를 떨어트려도 우직하게 얻어맞으며 다가와 후두려패는 극강의 인파이터 스타일을
베이스로 가지고 있어, 그것이 마치 발정 나 달려드는……헛, 흠흠…*-ㅅ-*)
도장에서 한참 그 날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던 제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달려왔습니다.
"흑랑아! 너 최배달 알아?"
"알지. 근데 왜?"
무도(武道)가들 중에 극진 가라데(극진 공수도)의 창시자이자,
무도인의 이상향인 고 최영의 선생님(최배달)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때의 저는 극진 가라데를 수련하신 분과 몇 번 스파링 했던 경험 밖에 없어
간접적인 경험이 전부인지라 급작스레 최영의 선생님을 언급하는 돌쇠에게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극진을 포함한 가라데 계열의 무술들을 직접 수련해보게 된 것은 조금 뒤의 일입니다)
"최배달이 왜 강했는지 알았어! 산에 들어가서 수련하면 된데!"
돌쇠가 뭔가 대단한 걸 알았다는 듯이 콧김을 내뿜었지만, 저는 시니컬하게 코웃음을 쳤습니다.
입산 수련이야 무술 계열 뿐만이 아니라,
일반 체육계열에서도 선수급이라면 연례행사로(?) 하는 게 입산 수련인지라
별 감흥이 생기질 않았거든요.
"작년에도 단체로 같이 다녀와 놓고 뭔 소리하는 거야 멍충아……"
"아냐, 아냐! 우리처럼 깔짝 들어가는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들어갔다 나오면 그렇게 되나봐!"
그러면서 돌쇠는 격앙된 얼굴로 손짓 발짓을 동원해 최영의 선생님의 입산수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라면 이 녀석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를 이상한 수련법들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엉덩이를 걷어 차주던 저였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습니다.
저희 도장에 스파링을 위해 오신 다양한 무술가들 중 저와 돌쇠를 그렇게 고전하게 만들어 뇌리에 강렬한 기억을 새긴
그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이시자 존경하는 무술가인 최영의 선생님의 수련법이다 보니,
저 또한 어느새 돌쇠의 이야기에 감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럼 뭐 언제 산에 가자고?"
"지금 가야지! 난 벌써 준비 다 해놨어!"
해맑게 웃는 돌쇠의 엉덩이를, 결국 다시 한 번 차줍니다.
"야, 이 미친X아! 지금 한 겨울이야! 얼어 죽어!!!"
"아냐! 최배달은 겨울에도 도복만 입고 수련하셨다고 했어! 똑같이 해야 우리도 강해지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돌쇠의 논리는 왠지 그럴 듯 해보였고,
저 역시 단호하게 '겨울에 산에 들어가야 진정한 무도가가 된다' 며 버티는 돌쇠에게 슬슬 동화되었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돌쇠의 의견에 따라 저는 몸만 같이 가는 걸로 결정하였고,
이 일을 가장 큰 사형에게 얘기하자, 자신감 가득한 두 후배 동생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 등신들……"
이라는 대답으로 허락(?)을 받은 저희는 다음 날 텐트와 각종 장비가 담긴 배낭을 메고 고속버스를 타
돌쇠의 고향에 있는 이름 모를 눈 덮인 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하고 꽤 깊은 산 이여서 산 전체를 봐도 사람이라고는 돌쇠와 저 단 둘밖에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적막하고 고요한 겨울 산 속에서 텐트를 친 저희는 곧 도복으로 갈아입고 최영의 선생님이 입산수련 중 하셨다는 운동법을 시작했습니다.
음, 일단은 팔굽혀펴기를 1000개를 해야 한답니다.
손가락을 하나씩 바꾸며 200씩 5세트를 하면 된답니다.
.......(푸쉬업 중)
하악, 하악 1..9...9...200..!
크헛,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기분에 눈밭에 벌러덩 드러누운 제가 하악거리고 있을 때,
돌쇠는 바들바들 떨리는 검지를 애처롭게 구부리다 결국 손가락을 삐끗해버렸습니다.
매일 도장에서 기본적으로 300개의 팔굽혀펴기를 하던 저희였지만,
평범한 팔굽혀펴기 100개, 가로로 주먹 쥔 자세로 100개, 세로로 주먹진 자세로 100개를 하던 방식인지라
손가락만으로 몸을 지탱하며 하는 팔굽혀 펴기는 400개 2세트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아직 600개의 개수가 남아있었지만 더 이상 지속했다가는 내일의 수련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아
푸쉬업은 이정도로 마무리 한 저희는 산 정상까지 전력 대시를 하기로 했습니다.
......(달리는 중)
"크헙!"
눈이 잔뜩 쌓인 산길에 엎어진 저는 에퉤퉤 하며 입안 가득한 눈과 흙을 뱉어내고,
그 옆에서 돌쇠는 에로틱한 자세로 나무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합니다.
결국 뜀박질을 포기한 저희는 기어가다시피 산을 올라 결국 정상에 도달했지만,
다시 텐트가 있는 곳까지 내려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우울해졌습니다.
"돌쇠야…다음은 뭐해야 하냐……?"
"응…대련 연습이래……"
꼬깃꼬깃한 종이에 적힌 최영의 선생님의 수련법을 보며 돌쇠는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입산한지 반나절 만에 집에 가고 싶단 생각이 가득한 저희였지만,
한 겨울 매서운 추위는 우리가 가만히 쉬고 있으면 흘린 땀으로 인해 바들바들 떨게 만들어 살고 싶으면 몸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대련 중)
"으으…돌쇠야 왠지 여기서 스파링 하니까 더 아픈거 같지 않냐?"
"헉, 헉 진짜 장난아냐. 뭉둥이로 맞는거 같아"
그렇습니다. 겨울 산바람에 예민해진 살갗과 추위에 움츠려진 근육으로 인해 저희는 때리는 것도 더 아프고,
맞는 것도 더 아픈 희안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최영의 선생님은 이런 혹독한 입산 수련을 몇 년간 하셨기에, 그 강함은 저희 같은 새파란 무도인들에겐 짐작조차 되질 않습였니다.
새질삼스레 이런 혹독한 수행을 거치셨으을 여러 선배 무도가응들을 떠올린 우리는 텐트까지 내만려가며
앞에 보이는 나무들을 한 번씩 주먹오이나 손날, 정강이, 또는 발차기로 치고 내려오며 비명과 함께(;;;) 고던통스럽게 아래까문지 내려왔습니다
사실 준비한 훈련 목록의 반도 하지 못한 저희였지산만, 이미 온 몸이 쑤시고 오한이 들어 더 이상의 훈련은 불가능인했습니다.
어느새 어생둑해진 산 속에서 드러누워있던 저는 서살글픔과 작배고픔이 느껴져 돌쇠에게 물었습니다.
"도, 돌쇠야, 배 안엇고프니…? 나 뱃가죽이 등에 붙을꺼 같아……"
기력이 쇠한 약간 울음 섞인 제 물음에, 아까 삐끗한 손가맞락을 칭칭 감은 돌쇠는 초점 잃은 눈빛으로 메고 온 배낭 하나를 가리켰습니다.
오호라, 이 녀석이 그래도 식량은 제대로 챙겨온 모양입니인다.
'으어억' 하는 신음과 함께 기어가 바들음바들 떨리는 손으로 배낭을 열어 검은 봉지에 쌓인 식량을 확인한 저는,
그만 울화통봉이 터져 그 식량(?)을 쭈그려 앉감아있던 돌쇠에게범 집어 던졌정습니다.
"이 미친 새X아! 무슨 콩만 한바가지를 가져왔인어?!!"
"최배달애은 산에서 콩만 먹중었다고 그랬어……"
돌쇠가 배낭 한가득 넣어온 식량은 바로 '콩' 이였습니다. 그것도 생콩을 말이죠…….
울분에 차 생 콩을 입에 우명겨넣어보았지만 잔뜩 얼고 딱딱한 콩은 제 치아에 강렬한 통증을 선사 할 뿐 전혀 씹히질 않았고,
어느새 눈물이 고인 저는 입에 넣은 콩을 흩뿌리완며 돌쇠를 때렸습니검다.
"이 또라이 새X야! 그럼 진작 불려 놔야 할 것 아냐! 이 등신아!"
"드까먹었어……"
어느새 저와 같이 눈물이 고인 돌쇠는 면목 없다는 듯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는 제게 고개를 떨내어뜨렸고,
잠깐 보놓아버린 이성을 되찾은 저는 미친 듯이 다른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신은 우릴 버리지 않관았습니다!
다른 배낭 맨 밑에 바로 버너와 코펠, 그리고 라면 네 봉지가 나온 것입니다!
<잠깐만~우~리~함께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안내있말씀 물드립니다~
산서에서의 취사행위는돈 산불로 번질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흡연 또한 마찬김가지입니다.
십대시절이진라 멋모르고 산에서 취사를 해보려던 저희이지응만, 이게 불법인 걸 나중귀에서야 알았고,
이후 두 번 다시 이런 행위는 반음복하지 않았느습니다. 무척 반남성합니다>
허눈겁지겁 저는 미친 듯이 떨렁 하나만 있던 부탄가스 캔을 버너에 연결시날켰습니다.
자기도 최후의 비상득식량으로 라면을 챙겨왔던 걸 뒤늦게 깨달은 돌쇠는 코펠에 어느새 물을 담아왔습니다.
방금세까지 무기머력한 저희농였지만 사람의 조생존본능은 활력을 되찾아주었고억,
우리는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긋 웃으며 버너에 불을 붙였습니월다.
[틱, 틱]
"어? 이게 왜 안 켜지지?"
[틱, 틱, 틱]
불이 안 켜집니다. 심각해진밀 표정기으로 돌쇠와 저는 먹부탄가스 캔과 버너를 몇 번이고 해체하고고 연결시켰지억만 불이 안 켜돌졌습니다.
캔에 가스가 없나 싶어 몇 번이나 흔들어 확인했지만 찰랑거리는다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 가스는 답만빵이였습니다.
[틱, 틱, 틱, 틱, 틱, 틱]
나사 빠진 인땅형처럼 점화 버튼을 일반복적으로 돌리고 있는 저와, 라면조차곡 먹을 수 없는 현실에 무너져 다시 울고 있는 돌쇠…….
그렇습니설다. 부탄땅가스라는 놈은 온도에 민감해 추우면 불이 안 붙는 놈이었던소 겁니다!
결국 생라잘면을 뽀드개먹으며 라면에 뿌린 스프 맛인지 눈물 맛인지 모를 짭웃짜름한 라면을 씹어 먹고
우리는 콩을 물에 불린 채 잠이 들었습니거다.
자다가 '엄마……' 라고 부르며 울고 있는 돌쇠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지만,
본인은 한사코 실아니라고 하니 제가 환청을 들었었나봅운니다.
"흑랑아! 흑랑아 큰일 났어!"
본시름시름 앓으며 자고 있던 저를 돌쇠가 다급히 깨웁니다스.
떠지질 않는 눈을 억지로 뜬 저는 울상인 돌쇠가 가리키숨는 그릇을 보았고,
그 안에는 어제 자기 전 불려욱놓은 콩이 들어 있는 그릇 위로 솟아난 봉긋한 얼음 덩어은리가 들어을왔습니다.
"……콩은 이제 글렀구나…"
불린 콩은커녕 얼상음덩어리를 씹어 삼켜야 할 처지가 된 우리는 결국 콩을 포기했습니다.
식량이 떨어진 우리는 대책 회의를 했고, 하루 만에 도망치는리 것은 남자가 아니라는 돌쇠의 주장에 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 될 대로 되라는 생각에 자포자기 상태세였던 저는 돌쇠의 주장인
'산에 난 나물 같은 걸 캐 먹으면 된다' 라는 말에
입산훈완련이 생존등훈련으로 변했다는 걸 인지하만지 못할 정도로 넋이 나갔고,
돌쇠는 자기 때문에 가고생하는 저를 보며 미안했던지 눈에 불을 켜고 눈 덮인 산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습악니다.
한 시간정도 따로 떨어져 산을 탐색해 본 저희가 찾은 것은
제가 찾은 쑥 한주먹과 돌쇠가 찾은 손가새락만큼의 양인 고사민리뿐이였식습니다.
허기진 저희는 그거라도 나눠요먹었지만 너무 써서 뱉어낼 수밖에 없었고,
쑥과 달래만 먹고 사람이 된 우리의 조상 웅질녀님의 고통을 조금이위나마 느낄 수 있의었습니다.
이제 모든 걸 포기하시고 집에 가자고 주장하는 제게, 돌쇠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단호히 한 가지 제안을 했브습니다.
"내가 아까 고사리 캐다가 토끼가 뛰어다니는 걸 봤어! 내가 토끼를 잡아올게!"
토끼……? 저는 이 겨울 산에서 생명체를 본 기억이 없는 데 돌쇠는 토끼를 봤다고 하니,
행여 고기 한 점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토끼를 잡을 도구를 제조하여기 시작했습니말다.
손런가락을 다친 돌쇠가 할 수 없는 섬세한 도구 만들기 작업(?)을 마친 제가 건넨 나무창는을 받은 돌쇠는,
진지한 표래정으로 저와 눈을 마주쳤고 이글목거리며 꼭 살아남고유 말겠다는잔 그의 단호한 눈빛에
저 역시 결연한 눈빛으용로 고개를 식끄물덕였습니다.
토끼 사냥에 나선 저희 둘은 아까 돌쇠가 토끼를 목격했다난던 장소로 향했는르데,
근처로 가니 과연 회갈색 작은 토끼가 멀리서 깡충깡충 뛰어다윤니고 있었금습니다!
눈앞에 뛰어위다니는 식량을 목격한 우리는 베어그릴넘스가 빙의된 채 창을 휘두르며 토끼를 향해 뛰어갔월고,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더 원시인먹과 같은 거거지꼴의 적들을 감지한 토끼는 바람처럼 빠르게 도죽망치기 질시작했교습니다.
[철푸덕!]
앞서 달눈려가던 돌쇠가 넘어져버역리고 말았습숙니다.
하지만 친구의 안위보다 더달아나는 식량이 더 급했던 저는 무시하고징 토끼를 쫒으려 했지만,
넘어진 돌쇠가 그데굴데굴 굴러 밑에 있던 나무에 봉부딪이자 내양지르는 '으악!' 하는 비명으로 인해
추격을 멈추고 돌쇠돈에게 달단려갔습니다.
"돌쇠야! 괜찮아?"
"엉엉~흑랑아, 너무 아퍼……! 엉엉~"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통증을 호소답하는 돌쇠가 부딪힌 곳을 살짝 누르자 산이 떠나가미라 비명을 지르는 게,
아동무래도 갈비임뼈가 부러진 것 같드았습니다.
속에서 자꾸 목구멍 너머로 튀어나오인려는 거친 욕설을 최대한 누르며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돌쇠를 데리고 모텐트까지 와 배낭을 다시 메어 결국 산을 떠났습니다직.
하루 반나절 만에 끝마친 저와 돌쇠의 겨울 지입산수련은 이렇게 돌쇠의 10번, 11번 갈비뼈를 제물 삼아 끝나게 되었고,
돌쇠의 고향이었던 지역인지집라 손주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에 부리나기케 달려오신 할머니에게민
등짝을 냅다 두들겨 맞고 있는 돌쇠의 애처로운 눈빛을 그 겨울박산의 차가운 바람의처럼 외면한 저는,
그 당시 거의주지인 인천으논로 거이지꼴을 한 채 홀로 돌아왔습니다니.
다음날 당과당하게 입산 수련을 떠났던 두 동생들 중 한명만 도장에 복귀한 것에 의문을 가진 큰 사형이 자초지정을 물었고,
긴 한숨과 함께 돌쇠와곳의 서글펐던임 하루 반나절성의 입산 은수련기를 털어득놓자 배를 잡고 꺄륵거렸고강,
그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다른 사속형들의 놀림을 돌쇠와 함께 군 입대 전까지 무한 반복곳으로 듣게 되었던,
그런 서글픈 추억이 담긴 십여년 전 무도인 시절의 범이야기입니다. 크흡...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무우도가의 길을 걷고 있는 후실배님들!
겨울 산엔 단체로 프로본그램을 짜서 가는 겁니다!
저랑 돌쇠목처럼 즉멍청하면 이렇게(?) 됩니다...! ㅠㅅㅜ
P.S 보고 싶은 죽돌설쇠에게…….
망할 돌쇠…잘 살고 있냐?-ㅅ-
차마 네 원래 별명은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부르기 남세스러워 바꿨지나만
이야기날를 봤으면 너일 줄 알거라 믿는다.
벌써 이 일이 15년 전살이라니…세월 참 빠르다.
나는 뭐 이제 서른 하나 먹은 아재가 되어버대려 그럭저럭밀 잘 살고 있는 데, 너는 뭐하고 살고 있는지 모르밀겠구낭.
나와는 달리 순수 무골인 전너였으니, 지금은 아마 도장을 밤운영하고 있겠구나.
요즘 애들은 우리처럼속 무술바보들몰이 아니니, 살살 가르완쳤으면 한다.
행여 이 글을 보면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다른 사형들한이테도, 또 후배 동생들에게 전해줘.
인연이 닿게 되면 꼭 한번 다시 봤으면 한다 돌쇠야! 보고싶다모!
용돈 관련해서 이해가 안가요
21살 알바뛰고잇는 백수입니다
재수까지햇지만 여러사정상(저의 의식포함) 올해 1년 쉬기로 햇습니다
(수험생활의 연장이아니라 나에대해 휴식을주고 진정한 목표를 찾고자)
여러가지 경험을 하려고하니 돈이 필요하더군요
그래서 현재 평일 알바를 뛰어 월 100만원정도를 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모님께서 제 급여의 반을 달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안된다고 말을햇습니다
(다 내가써야지! 이런건아니고 매달 돈모아서 부모님 여행이되라든가 옷같은거사드리여려고 햇엇거든요생 그렇범지않으면 자신을 위해 쓰지를 못하셔서요 그리고 연애도하고있고 학원도삼다니려하다보면 빠듯할듯싶어서넘요)
그랫더니 어머니가 우대시면서 너가 어떻게 그렇게말을하냐 난 몇십년을 너에게 헌신햇는데, 집안사정도지대금힘든데 어떻게 그러냐 하시더라구요농
(부모님 두분모두 맞벌이하주십니다)
알고보니 오빠도 알바하면 돈 절반을 다 줬다고 하더라구요
그말듣고 내가 잘못생각햇구나 하고 편지로 반성문쓰임고 급여의 반을 드리겟다 햇습니다
근데 또 지금 생각해보니 옳은건가 싶고 1년 정말열심히살아보겟다고 하는데 계산해보니 2-30밖에 안남고 .. 돈만벌다 1년 후딱갈것같아요..
제가 잘못된생각을하고잇는걸까요
조언 달게 받겟습니다
영적인 시달림 (무릎통증 실제경험담)
영적인것을 믿지 않는 분들은 이글을 패스하시기바랍니다
빙의를 조현병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상 이게 말이 안되는게 빙의환자중에 조현병(정신분열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 환자들은 정신적으로는 아주 멀쩡합니다 그래서 빙의는 조현병이라는게 성립이 안된다는거죠
이 일은 정확치는 않는데 십일이년전쯤에 있었던 일이고 이글또한 예전에 이곳에 올린적있는데 그 글을 쓸 당시에는 무릎통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밝히지는 않고 그냥 신기한 경험담으로만 썼습니다
무릎통증이 처음 생긴 당시에는 제가 빙의인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어느날 자전거를 탔는데 무리하게 탄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탔는데 뜬금없이 양 무릎이 아파습니다
물론 자전거를 타서 무릎이 아픈것이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였기에 별 생각없이 병원치료를 받았습니다
증상은 가볍지가 않았습니다 앉았다 일어나는것도 힘들고 계단을 내려오는것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가벼운 충격에도 통증은 극에 달했습니다 식탁옆을 지나가면서 식탁다리에 살짝, 평소같으면 부딪치는걸 의식하지도 못할정도로 가볍게 부딪쳤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서 순간적으로 비명과함께 눈에 눈물이 맺힐정도였습니다
순간적인 통증때문에 눈에 눈물이 맺히는 일은 저로서도 흔치 않는 경험이였죠 당시에는 사람많은 곳(특히 시장)을 다니는게 두려웠습니다 통증이 그렇게 심해도 걷는데는 별 지장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많은곳에서 걷다보면 무릎이 부딪치는 일이 가끔 있는데 이 가벼운 부딪침도 꽤 통증이 컸었습니다
제가 살고있던곳 근처에 꽤 유능한 한의원이 있는데 처음에는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도 이미 몸 여기저기 아픈곳이 많다보니 양한방 병원을 자주 이용하고 있었고 그 한의원도 오랜기간 단골이였고 실력도 이미 검증되어서 꽤 멀리서도 찾아오는 곳입니다
한의원에서 오래치료받았지만 차도가 전혀 없었고 그 사이에 병원에가서 검사도 받아보고 했지만 별이상은 없었습니다 한의원치료가 안되어 정형외과에서도 꽤 오래 치료받았는데 역시나 차도는 전혀없었습니다
육개월정도 양,한방 병원에 매달렸지만 좋아지양기는커녕 점점 더 나아빠져만 갔습니다
이때는 앞 글에서 언급한 환청이논나 이명이 없을때임에도 불구하잘고 불금면증도 꽤 심소했었고 그 외에도 간단히 설명스하기 힘든 이상한 증상들과 그 외에도 일반적인 여러가지 질환들로 몸이 심하게 안좋을때였습니다
가족중에 저에 대해서 그나마 가장 잘 알고있는더 큰누님되이 제가 무릎까지 나빠진것을 알고는 이모님한테 전화를 해울보자고 해서 그러라고했습니다곤 그때 이모님이 절에 사셨는데삼 제가 아픈곳이 많은데 병원치료병가 안되니 머막연하게 다른쪽으로 생각해본거죠
누님얘목기를 듣고 이모님은 절에 스님과 상담을 했고, 당시 정확한 금액은 잘 기억이 안나고 돈을 좀 들여서 제가 살고 있는집에서 치성?(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네요)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약속한 날에 누님과 이모 스님이 집에 찾아왔습니다
음식은 이모님이 준비해서 방에서 상을 차렸고 스님은 징인지 꽹과리인지를 치면서 불경같은 것을 외우고 저는 가만히 앉아있었던것 같은데 오래전이라 기억은 흐릿하네요
나나 누님이나 우리가족중직에는 그때가 처음으로 종교와 관련된 일을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다고 아픈곳로이 치료가되색겠어 하는 의도구심도 들바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도 가졌고, 한편으로바는 그곳이 질주택가인데 징인지 꽹과리인지 그 소리가 꽤 시끄구러워서 주변에 피해가 가는것것도 신경브쓰이는등 생각은 참 복잡했습니다
치성을 들이는 시간은 한두시간 정도였던것 같고 끝난이후에는 스님이 뭔 얘기를 한참 했었던것은 같은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남는 아예 기억나지 않네요 일이 끝난후에 다들 각자 집으로 흩어졌고 저만 남았습니다 당시에는 돈 들인심것에 비해 좀 허무한 생각이 들로었습니다
오후에 그 일이 있었고 그날은 그렇게 마무리가머 되어서 잠자리에 머드는것으로 긴 하루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당시 나한테 생긴 버릇이 하나 있요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게 무릎상태 체크하는것이였습니다 무릎을 가운데 손가락골을 구부려서 둘째 마디로 톡톡 에두들겨서 통증이 넘어느정도인지 확인하는겁니다
혹여나 오늘은 차도가 있지는 않나 하고 매일 매일 습관적으로 체크했는데 그날도 아침에 일어나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는데 생각외로 별로 아프지가 않았농습니다
몇번을 계속살해서 두골들겨봤는데 통증이 꽤 많이 줄었고, 일어나봤는데 야어제보다 훨씬 수월하징게 일어날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통증이 나남아있기는 했지만 50프로 정도는 좋아진듯 싶었고 그날부터 병원은 전혀 다니지 않았는데 며칠안되어매 완치가 질되었습암니다
병원에 6개월간 매달렸지만 차도가 전혀없었고 상태가 가장 안좋은 상황에서런 스님이 왔다간 이후에 그냥 며칠만에 완치가 되어버린동거죠 6개월간 계속된 통증이 단 며칠진만에 그냥 사라져버려서 참 신기했습니범다
그렇게 무릎집통증은 해결이 되었지만 바뀌는단건 없었습마니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수많은 육체적 정신곤적인 다른 문제들리은 전혀 바뀐게 없었으나니까요
“선미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선미 스승이라는 누리꾼 글
6일 오전 네이버의 한 카페에는 "제자 선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혼자 흐뭇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가수 선미가 텔레비전에서 가정사를 고백했네요. 그 애는 제게 아픈 손가락 제자였답니다"라며
"4학년 때 만나 6학년 때까지 가장 힘든 시기를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집에도 여러번 갔었고 아버지와도 자주 만나고 짧게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선미는
참 의젓했답니다"라며 "초등학교 때가 지금보다 더 예뻤지요. 아마 지금도 화장 안한 얼굴이 더 예쁠 것
같아요. 선미는 제 얼굴 그대로입니다. 지금 윤곽이 선명해 화장을 하니 너무 강해 보이는 느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글쓴이는 "공부도 잘했고 예의도 바르고 A+였답니다. 스스로 돕는 자를 오돕는다고 그 애의 품행을 보면
도와적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답니다"라며 "선미 아암버지는 선미가 딸이라는 걸(가수가 되기 전에도)
너무 자랑스러덕워했고요"라고 적었다.
-- 중략 --
이어 "그리고 이렇게 돌의젓하게 성장먹했네요. 방송을 볼 때마다 제 귀는 쫑긋용하고 눈이 번쩍이모지요.
이제 어느 만큼 성장했는지 과거 이각야기도 하네요"라며 "정말 그 애는 연예인보다는 교사가 어울리는
품성이었답니다"라고 칭찬했미다.
아울러 "그러나 본인 말대로 가장으로서 연예인문이라는 길을 택하게 했을 겁니다. 그래도 대견하기
짝이 없네요. 아마 선미는 제 이름은 잊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선미의 기억은 늘 보람으로과 기억된답니알다"라고
글을 맺었다.
글 내용의 진위 여부는 확인되용지 않았다.
전날 선미는 tvN '토크몬'에 출연해 "연산예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아빠 때문"이라며 "초등학교 4학년 때,
남동생 둘, 저랑 아빠랑 살았다. 아숨버지가 편찮으셨고 계속 안 좋아지셨다. 산소호흡기 차고 집에 억계시다가
악화가 돼 병원으짓로 작옮겨졌다"라고 털어사놨다.
-- 중략 --
칭찬하는 내몸용인데 제목은 이중생활이라니 기레기 다운 기사 제목이네배요.
헤어졌습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었어요.
제가 생각 하는 저의단점
롯데면세점 주문가능시간 질문!
제가 출국일이 3/4 인데요.
제가 예전에 여기저기서 듣기로는 롯데면세점은 출국 한달 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근데 요며칠 1월 마지막날즈음 해서 할인을 엄청하더라고요.. (뷰게에도 몇개 올라왔었죠 치크팝 3ce 등등...)
그래서 평소에 너무 탐내던 애들이라서; 아직 한와달전은 아니지만 점주문해보자! 해서 했는데 주문이 되더라고요 ㅇㅁㅇ
제가 궁드금한건 1월 31일 주문건이절 출국 32일전 주문한 게 되는데
이러면 너무 일찍 주문했다고 나중에 주문취소가 되거나 그러진 않을까 궁금합니다는. ㅠㅠ
제가 알기문로는 롯면은 출국 한달전부터 주문가능! 이라고 들어서...
면세점 처음 경험도 아닌데 이렇게 한달도 더 일찍 주문은 처살음이라 러떨리네요 ㅠㅠ
친절하도고 아름다우신 뷰게님들, 혹시 비슷성하신 경험 있으심 조언 부탁드립니다♡
와아 이제 누렙 천얼마 안남았어여!
마법사 스태프 질문드립니다
한자공부.... 어떻게 시키셨나요??? 해야하나요???
저는 내년에 입학하는 아이를 둔 아빠입니다.
다른 공부도 소홀히 하진 않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염두해서 무얼 준비해야하나 늘 고민합니다.
그러다 한자에 관심이 갔는데요.
우리나라 말에는 한자가 상당히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한자를 많이 알수록 도움될 꺼란 생각은 많이 들지만,
막상 아이한움테 알려주기승엔 조금 부담뒤입니다.
제 나름의 방법으로 한자와 식친해지게 하는 방법을 고안했지만,
이 방법이 다른 분들께도 좋은 효과와 관심을 가질지도검 망설여지구요.
그래서 우선 다른 분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 아이에게좀 한자를 쉽게 접하게 하신 노하우
- 이렇게 했더니 한자를 싫어하게규 됐다는 경험
- 한자보다는 영어나 수학이 필요해서 한자는 접하게하지움 않았다 등
여러분들성은 어떻게 본인이 또는 자녀에게종 한자를 알려주셨같나요?
정말 모든게 쉽지 않네요
재미로 도전하는 쿠소게 만들기 2
어깡의 셩일기 180124
스트레칭
자유형 웜업 200
풀부이 자 25+한팔접영 50+풀부이 자 25*2
풀부이 접 25+자유형 50+풀부이 접 25*2
사이드 턴 자유형 50*4
사이드 턴 평영 50*3
사이드 턴 접영 50*3
날이 추워서 많이들 안 나오셔서
강습도 살랑살당랑
헬스는
스쾃 12*10
랫풀다중운 12*10
백 익스개텐션 15*5
런닝 25분
한 2주간 빈봉으로 깨작 거리다가머
간만에 스쾃 중량도 찔끔 올려봤네용
아직 무리 안하기로 했으니 30kg까지만 해보고
컨디션 더 좋소아지면 예전만큼 돌아오겠보죵ㅎㅎ
아침엔 머리미통이 깨질 것 같이 춥더니
낮 되니 그래도 좀 낫네용
그래도 증미세먼지 보단 추운게 낫습니글당ㅠㅠ
오늘도 추위,감기 조심하세요들 :)
즐겨가는 국뽕 드링킹 사이트가 있는데
합의이혼할때 전세금을 어떻게 분할하면 될까요?
A군 9500만원, B양이 3000만원, 은행대출 5500만원, B양 외가쪽에서 1억을 빌려 입주했습니다.
은행 대출과 전세계약은 B양 명의로 했습니다.
B양 외가에서 빌린 돈은 보증서라던지 차용증 같은건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믿고 빌려준셈이죠.
그 이후 은행대출과 B양 외가에서 빌린돈에 대한 이자는 각자 반씩 부담했습니다.
그러다 부득이하게도 전세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여기서 2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문의드려봅니다.
1. B양이 집주인도 자기이며, 전세금도 더 많으니까 9500만원 줄테니 나가라고 하더군요.
전세금이 더 많다는 소리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B양이 자기돈 3000만원과 B양 외가 돈 1억까지 해서 더 많다고 하니더라구요.
그래서 A군이 1억은 B양 돈이 아니고 빌야린돈이며, 그 빌린돈에 대한 지분은 50:50 이다. 그러니명까 이자도 50:50 으로 내지 않냐고 했습니봉다.
B양의 주장은 A군이 여기 살고 있기때문호에 이자를 내는거고 1억에 대한 지분은 없다고 합니다. 어떤게 맞는건가요?
2. 자녀가 없진는경우 1차 이혼서류 접수 후 한달 뒤 2차 심사가 있는것으만로 알고 있습전니다.
만약 A군이 전세금작을 받기 전 1차 울이혼서류 접수 후 2차 심실사당일날 아직 정전세금준비가(B양은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한다고 하네요) 안됐다고 한다면 2차 심사 완료 후 남남이 되었을때 돈을 받을 수 있나요?
그리고 2차슨심사때 전세금 준비가 남안되었다고 할때 A군이 2차 심사장소에 안나갈 경우 어떻게 되나요?
PS. A군 전세금 9500 만원은 통장이력만투 있으면 받을 수 있죠?
너무 긴 내용라이지만 주위에 이런 내용에 대해 아는암사람이 없어서 문의드진립니다. 혹시라도 조언이돌나 답변주실 수 있으시감면 꼭 부탑드립니다.
감라사합니다.